기이한 마스크, 독특한 의상, 아름다운 성조와 운율을 지닌 이방의 언어와 같은 것들 때문에 쇠라는 빙원에서 색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가 대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식견이 풍부한 탐험가들조차 섣불리 그에 대한 답을 하지는 못했다.
쇠라는 빙원의 언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탁월한 성과도 거뒀지만, 사고방식의 차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는 항상 어느 정도 장애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 수수께끼 같은 작은 여행자가 각지의 도시에서 환영을 받는 데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그는 친절했을 뿐만 아니라, 늘 신기한 의술로 도움이 필요한 생존자들을 치료해 주곤 했기 때문이다.
쇠라가 상처를 치료하는 데 사용한 약초는 빙원에서는 자라지 않는 식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는 그가 빙원과는 전혀 동떨어진 곳에서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쇠라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만큼이나 쇠라도 빙원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그는 새나 짐승과도 쉽게 친해지는 것 같았고 추위에 강한 식물들을 직접 맛보는 방식으로 “연구”에 몰두하는 바람에 건강에 문제를 겪기도 했다.
쇠라가 쓴 글을 연구한 후, 희망 연맹의 학자들은 이 미스터리한 소년이 고대 부락인 원더러 출신이며 마스크의 외관으로 봤을 때 쇠라는 원더러 부락의 숭고한 주술사였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원더러 부락에서 주술사는 의사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대지의 영혼과 소통”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고대 서적에 따르면 원더러들은 빙하시대가 시작되었을 무렵 이미 자취를 감췄다고 하며, 그들의 행방에 대해서는 학자들도 일치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들이 이미 멸망했을 거라고 믿는 사람도 많았지만, 쇠라의 출현은 이런 고정관념을 뒤집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이는 수많은 의혹을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격변이 일어나기 전 주술사들의 안내에 따라 땅속으로 이주한 원더러 부락은 땅속에 움튼 신기한 고목 한 그루를 둘러싸고 새로운 마을을 건설했다.
햇빛이 주는 자양분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고목의 뿌리와 가지, 잎에서 나오는 열에너지는 원더러의 선조들에게 생기 넘치고 기이한 생태를 지닌 작은 세계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지상의 찬 바람을 피해 대대로 번성해 왔다.
하지만 어린 쇠라가 시련을 거쳐 주술사가 되려던 시기에 고목의 생명력이 서서히 스러져가기 시작했다. 장로들의 말에 따르면 고목에 붉게 타오르는 결정체의 자양분을 급히 공급해 줘야 했고, 이를 위해 쇠라는 집을 떠나 낯선 세계로 구원의 길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